만리장성

UNESCO가 소개하는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 유목민족의 공격을 막기 위해 건설한 성벽입니다. 영어로는 ‘Great Wall’, 중국에서는 ‘长城’이라고 부릅니다.

탁월한 성벽 구축의 역사는 춘추시대(BC 722~BC 481)와 전국시대(BC 453~AD 221)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벽 건설은 기원전 408년 위(魏)나라가 진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은 성벽처럼 봉건적인 갈등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중심부에 보존된 유적들에 따르면 기원전 300년 무렵 북방의 침략자에 대항하여 진·조(趙)·연(燕)나라가 축성한 성벽들보다 먼저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전 220년 통일된 진나라를 건국한 진시황은 기원전 3세기 혹은 그 이전 시대에 구축된 몇몇 성벽을 연결시켜 재건하였습니다. 이는 내몽골의 오르도스(Ordos)에서부터 만주까지 성벽을 증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원전 206년 한나라가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최초의 통합 방어체계로서 성벽을 서쪽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성벽의 모습은 황허(黃河) 유역의 계곡 지대와 란저우(蘭州)에 여전히 중요한 유적으로 남아 있습 니다.

만리장성은 그 이후 더 확대되었는데, 한(漢)나라의 무제(武帝, BC 140~BC 87)는 중국 서쪽의 둔황 지역부터 동쪽의 보하이만(渤海灣)까지 약 6,000㎞에 해당하는 성벽을 더 지었습니다. 중국 북방 경계지역에서는 몽골족·투르크족을 비롯해 초원 지대 최초의 제국인 흉노 제국의 퉁구스족 등의 침략 위험이 커짐에 따라 이전보다 더욱 견고한 방어책이 필요했던 이유 때문입니다.

서기 200년 한 왕조가 몰락하자 당시 중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방어책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만리장성을 증축하거나 유지 관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몽골족의 멸망으로 오랜 갈등 기간을 끝낸 뒤 명나라는 진시황의 성벽 구축의 전통을 부활하여 5,650㎞에 이르는 성벽을 구축하였습니다. 북방 민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만리장성은 수비대가 아닌 군이 관할하는 9개의 진(陣) 체제로 관리되었습니다.

요새는 마을, 산길, 여울을 방어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지었습니다. 성벽의 맨 위쪽 길은 군대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고 연락병의 이동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2개의 상징적인 기념물이 오늘날까지도 성벽의 양 끝에 서 있습니다. 동쪽 끝 산하이관(山海關)이 첫 번째 성문이고, 1949년 이후에 완전하게 복구된 요새 자위관(嘉峪關)이 북서쪽 끝에 있는 마지막 성문입니다.

만리장성은 복합적·통시적(通時的) 문화재로서 2,000년 동안 오직 전략적 목적으로 유지된 군사 건축물의 특별한 사례입니다. 그리고 성벽 건설의 역사는 방어 기술과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계속 발전했습니다. 만리장성의 목적은 외부의 공격을 막아내고, 동시에 침략자들의 관습으로부터 중국인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벽의 축조 과정 중에 백성의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만리장성에 대한 이해는 중국 문학을 이해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합니다.

명나라 시기의 만리장성은 거대한 공사를 수행하기 위한 대담성뿐 아니라 건축학적으로 완벽성을 지닌 걸작입니다. 광대한 대륙의 경치와 어우러진 성벽은 완벽한 건축물의 예입니다. 춘추시대 중국인들은 북쪽 변방을 따라 방어벽을 구축하면서 독자적인 건설 공법과 공간 구조를 확립하였습니다. 또한, 만리장성 공사에 동원하기 위해 인구를 이동시킴으로써 중국 인구의 확산이 두드러졌습니다. 만리장성은 탁월한 고대 중국 문명에 대한 증거입니다. 당시 명나라는 간쑤(甘肅) 지역에 남아 있는 서한(西漢) 시대 진지 안에 흙을 다져 채워 넣는 방식으로 축성하였습니다.

참고 문헌

만리장성, UNESCO 세계문화유산  <URL: https://heritage.unesco.or.kr/%EB%A7%8C%EB%A6%AC%EC%9E%A5%EC%84%B1/>